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(문단 편집) === 태상호 기자의 증언 === [[호비스트]] 출판사의 [[플래툰(잡지)|플래툰]]의 태상호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종군 취재 목적으로 갔을 때였다.[* 아프가니스탄 피랍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이다.] 그가 50 km 거리를 이동하는데 미군이 장갑 [[험비]] 5대로 에스코트해줘야 했다. 본인도 "만약 죽더라도 아무런 보상과 보호를 받을 수 없다"는 각서를 쓰고, 자비로 구매한[* 만약 미군이 방탄복이나 방탄모를 빌려준다면 해당 장비가 적절한 방호력을 제공해 주지 못할 경우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다. [[종군기자]]들 역시 방탄 장비는 스스로 갖춘다.] 방탄복과 방탄모를 착용한 후 인적이 드문 새벽을 이용해 이동했다. [[카불]] 시내에 도착했는데, 아프가니스탄 호텔에서 한국인이라고 하자 [[갑분싸|주변 분위기가 싸해지면서]] 호텔에서 내쫓았다고 했다. 결국 [[독일]] 기자단 숙소에 얹혀 살아야 했는데, [[독일인]] 기자가 그 이유를 설명하길, "[[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사건|한국에서 온 개신교 단체들의 선교를 목적으로 한 행사]]로 인해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감이 극히 심해졌다."라고 했다고 한다. 현지 공무원에게는 '운동축제'로 신고했다고 한다. 더군다나 그 설명을 하며 보여준 아프가니스탄 국내 신문에 그 이야기가 1면으로 나와있었다. 그 때문에 태상호 기자를 포함한 한국 국적의 일반인이나 자원봉사자, 그리고 [[왕진]] 가방이나 이를 실은 차량으로 봉사 겸 선교 활동을 하던[* 의료 선교사들의 경우, 의료 기술이 열약하거나 오지라서 병원조차도 없는 곳에서 한줄기 빛과도 같은 사람들이다. 물론 처음엔 별 관심이 없거나 경계하기도 하지만 진료를 잘 본다면 선교라도 기꺼이 들어줄 의향이라도 생긴다. 일례로 자신도 병자이면서 필리핀에서 자차를 이끌고 달동네나 오지까지 가서 무료 봉사를 하다 2018년 8월 [[위암]]으로 사망한 박누가 씨가 대표적. [[https://www.etoday.co.kr/news/view/1951469|#]]]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에게 스스로를 그나마 상대적으로 평판이 나았던 [[중국인]]이라고 해야 했다.[* 그런데 사실 [[중국인]]들도 현지에서 [[매춘]]이나 금지품 밀수에 [[돼지고기]] 판매, 재건사업 관련 일자리 독점으로 미움을 받고 있다.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종교 선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돈벌이가 목적임에도 [[중화사상]]이 원인이 되어 중국인들도 미움을 많이 받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꽤 많이 죽었다. 2004년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간 채수문 중령의 글을 보면, 중국인 노동자 숙소에 폭탄이 터져 25명이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던 일이 거론된 바가 있다.] 그런데 이런 곳에 가겠다고 하니 여행 계획을 알게 된 정부에서는 당연히 못하게 말렸다. 공식 공문을 보내 경고까지 했는데, 이들은 위에 나와 있듯이 [[베이징시|베이징]]과 [[두바이]]를 거쳐 '''기어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. 심지어 위험 지역임을 알리는 간판 앞에서 웃으면서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. 그래놓고선 납치되자 뒤늦게 "엄마 보고 싶어요, 밥이 먹고 싶어요." 이러면서 후회하면서 애걸복걸한 것은 [[안전불감증]]이 빚어낸, 웃기는 상황이다.''' 결국 이들을 구하려고 고생한 건 [[한국 정부]]였고, 인질들 몸 값은 국민 [[세금]]이었다. 여담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활약한 강성주 아프가니스탄 [[특명전권대사]]는 얼마 뒤 [[도미니카 공화국]] 특명 전권대사로 갔는데, 거기서 옆 나라인 (관할지역) [[아이티]]에 벌어진 [[2010년 아이티 지진]]을 맞게 된다. 한술 더 떠서 [[아이티 지진 구조대 보도 논란]]까지 겪어야 했으니 그야말로 [[멘탈붕괴|멘붕]]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